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이 책은 단순히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믿었는가, 믿지 않았는가에 대해 답하는 책이 아니다. 폴 벤느는 그러한 물음을 통해 우리 인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기 시대의 진실을 구성하고 상상해왔는가를, 즉 역사의 “진실 프로그램”과 “구성적 상상력”을 밝히고자 한다. 폴 벤느는 모든 시대는 자기 시대에 맞는 “진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전 시대나 그 이후의 시대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당대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만든 프로그램으로, 그것이 바로 그 시대의 하나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차례

 

머릿말

서문
제1장 역사의 진실이 전통과 민간 유포본으로 존재했을 때
제2장 진실 세계의 복수성과 유추성
제3장 지식의 사회적 분배와 믿음의 양태들
제4장 믿음의 다양성과 인간 사고의 세 분열
제5장 역사 기술에 내재하는 진실 프로그램
제6장 어떻게 신화에 그 근원적 진실을 되찾아 줄 것인가
제7장 상투적으로 입에 오르는 신화
제8장 역사가도 자신의 프로그램을 벗어나기 어렵다
제9장 이런 진실도 있다 : 위조자의 진실과 문헌학자의 진실
제10장 문화를 보는 자와 진실을 믿는 자
주석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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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러면,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를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이 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 책의 제목을 들은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놀랍게도 똑같았다. “그러면,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를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로마사 교수를 지내고 현재는 같은 대학의 명예 교수로 있는, 로마사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폴 벤느도 독자들이 먼저 그 점을 궁금해하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의 서문 첫머리에서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대답하기 곤란한 물음이다. ‘믿는다’는 말은 꽤나 많은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조금이라도 역사에 교양이 있는 독자라면, 제목만 읽고서도 벌써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믿었지, 물론 그들은 신화를 믿었어!’ 우리는 다만 ‘그들’에게 명백한 것이 우리에게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 주고 그 원초적 진실의 드러나지 않은 전제들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믿었는가, 믿지 않았는가에 대해 답하는 책은 아니다. 폴 벤느는 그러한 물음을 통해 우리 인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자기 시대의 진실을 구성하고 상상해 왔는가를, 즉 역사의 “진실 프로그램”과 “구성적 상상력”을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의 핵심 논점은 바로 부제―구성적 상상력에 대한 논고―에 있다. 폴 벤느는 모든 시대는 자기 시대에 맞는 “진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 이전 시대나 그 이후의 시대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당대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만든 진실 프로그램이다. 즉 그들이 상상력으로 구성한 진실 프로그램이자 그들이 만든 구성적 상상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시대의 하나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진실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진실’이라는 것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적이다. 따라서 동일한 진실이 아닌, 이질적인 진실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한 사람도 여러 개의 진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같은 시대도 여러 개의 진실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 개인의 상이한 믿음들과 그 주관적 강도의 차이, 표리부동함, 모순들도 그 진실 프로그램의 복수성으로 설명된다. 우리의 정신은 큰 고뇌도 없이 자가당착에 빠지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진실 프로그램을 바꾼다. 수시로 일어나는 그 현상은 전혀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일상적인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우리의 삶은 여러 종류의 다른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복수성은 간혹 예민한 자책 상태에서 위선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일상의 비열함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라디오의 주파수를 바꾸듯 한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옮겨간다. 그래서 모든 진실들이 우리에게는 서로 유사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양자 물리학이라는 하나의 진실 프로그램 안에서 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리아드]를 믿는다면 이것은 신화적 프로그램 안에서 그에 못지않게 진실일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그렇다. 우리가 설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허구로 여긴다 하더라도 그것을 읽는 동안은 그것을 믿는다. 앨리스의 세계는 그 마법 세계의 프로그램 안에서 일상 세계만큼 수긍이 가고 진실되며, 하나의 세계로서 현실화된다. 진실의 영역을 이리저리 바꿔도 우리는 여전히 진실 안에, 또는 진실의 유추 안에 있다. 진실은 호머의 것이든 아인슈타인의 것이든 모두 상상력의 딸들이지 자연 빛의 산물은 아니다.

진실은 구성적 상상력의 딸이다

진실은 상상력의 딸이다. 믿음의 진정성은 대상의 진실에 따라 측정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진실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이 바로 우리 인류가 지닌 구성적 상상력의 딸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재현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상상되는 것이다. 아직도 한국 학계에서는 ‘재현 이데올로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벌써 20∼30년 전부터 격렬한 ‘논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있는 사실과 자료를 끌어 모아서 ‘재현’하고자 한다. 사실의 ‘재현’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못나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시각이 정반대인 두 매체 A와 B가 있다고 하자.
200∼300년 뒤에 “재현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두 연구자가 각각 A와 B를 따로따로 연구를 했다면 그들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완전히 반대되는 결론을 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래서 진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구성적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당시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정합성을 살피고, 합당한 논거를 찾아서, 설득, 동의, 합의를 통하여 상상력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폴 벤느가 강조하고 있는 중심 논제이다. 진실은 구성적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신화가 된다

이제 구성적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진실 프로그램, 그것은 하나의 신화가 된다. 모든 시대는 자기 시대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시대인들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새로운 신화가 되는 것이다.

현대에는 ‘정치적 의례’가 구성적 상상력이 만든 대표적인 진실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하나의 신화가 된다. 정치 행위라는 것은 다수의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해 정책을 제시하고, 군중을 동원하고, 흑색선전을 하고, 광고·홍보를 하는, 옛날로 보면 일종의 의례 행위이다. 그렇게 하여 의회에 들어가면 이제 헌법 기관으로서의 권위(권리와 의무)가 생기게 된다. 바로 그 권위의 상징이 의사당인데, 대개 의사당이란 곳은 그러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옛날의 신전처럼 좋은 자리에 그만큼 위엄 있게 건설된다. 즉 옛날의 조상의 권위 → 신전 → 신화의 등식이 오늘날에는 다수 공감(의원) → 의사당(의회) → 신화로 바뀌는 것이다. 옛날에 신전에서 거행되던 신화 의례 행위가 이제는 의사당에서 행해지는 정치 신화 의례 행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 행위는 우리가 만든 우리 시대의 진실 프로그램이며, 우리 시대의 신화이다. 전통적인 신화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신화로 진실 프로그램을 바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렇게 원하여 구성한 것이며, 바로 우리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2002년 12월 대한민국의 진실 프로그램, 대통령 선거: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요 최근에 우리는 5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선거를 하고 있다. 물론 헌법이 그리 되어 있어서 5년마다 선거를 하는 것이겠지만, 다른 측면 예를 들어 이 책에서의 폴 벤느의 논지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5년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진실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5년마다 새로운 구성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진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우리 시대에 맞는 진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선거 벽보를 보면 형식적으로는 7개의 진실 프로그램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유권자들)은 그중에서 특히 두 개의 프로그램을 선호하며, 다른 한 프로그램을 신선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다. 어쨌든 우리는 그중에서 하나를 택하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프로그램이 앞으로 5년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실 프로그램이 될 것이다.

폴 벤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진실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다. 즉 어떻게 이성이 진보하는가, 어떻게 어떤 나라가 세워졌는가, 어떻게 사회가 그 기본 조건들 위에서 생존하고 사고하는가 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는 반성적 태도 위에서 지나온 역사의 자취를 살펴보고 여러 세기에 걸친 진실의 형성 과정을 면밀히 고찰하며, 그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에게 얘기를 건네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진실은 진실이 변한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 보일 것인가?
우리는 어떤 진실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세계 16개국에서 번역 출판된 현대의 고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이 출간된 지 몇 해 뒤에 나온 이 책(1983년 출간)에서 폴 벤느는 마치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전 세계를 풍미하게 될 포스트모더니즘을 예견이라도 한 듯 기존의 역사학적 방법론에 반대(물론 그의 새로운 역사학 방법론은 70년대에 그가 쓴 『역사는 어떻게 씌여지고 있는가』를 통해 학계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하며, 다시 말해 역사학을 탈이데올로기화, 탈신화화하며 포스트모던적인 새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 (폴 벤느는 미셸 푸코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학문적 동지로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공동 연구를 많이 했는데, 이 책도 푸코와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이후 현재까지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 브라질, 포르투갈, 일본, 그리스, 터키, 헝가리,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체코 그리고 슬로베니아 등 세계 16개국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현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 책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는 우리가 신화 책이나 역사 책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들의 거의 전부가 빠져나가고 없다. 사회도 없고, 경제도 없고, 연대도 없고, 정치적 사건은 물론 없고, 풍속이나 일상의 디테일도 없다. 더욱이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도 없다. 폴 벤느는 의도적으로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키케로까지, 파우사니아스로부터 에우세비오스까지, 그리고 그들이 다루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영웅들까지 종횡무진 탐구하는 폴 벤느의 상상력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구성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역사를 해명하는 그의 상상력이 놀랍다.

저자소개

저자 : 폴 벤느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방스 엑스 대학의 문학부 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의 로마사 교수로 재임했다. 현재는 콜레주 드 프랑스의 명예 교수로 있다. 고대 로마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아날학파의 장기 지속적인 사회 구조주의에 반대하고 미시사의 접근 방식에도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 폴 벤느의 역사 기술은 프랑스 심성사의 독특한 한 봉우리를 이룬다. 그는 역사에서 지속보다 단절을 보는 니체 그리고 푸코식의 ‘차이의 계보학’을 추구한다. 주요 저서로는 이 책과 함께 『역사는 어떻게 씌여지고 있는가: 인식론적 논고Comment on écrit l’histoire?』, 『빵과 원형 경기장Le pain et le cirque』『고대 로마의 사회La société romaine』 등이 있으며, 『사생활의 역사Histoire de la vie privée』 제1권의 편집을 주도하기도 했다.

역자 : 김운비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마치고, 프랑스 파리 7대학에서 「쥴리앙 그락의 소설 묘사」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번역, 평론, 소설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 소설 『청동 입술』(문학과 지성사)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정열의 열매들』(다니엘 페낙), 『아름다움을 훔치다』(파스칼 브뤼크네르), 『페기 수와 유령들』(세르주 브뤼솔로) 등이 있다.

 

  • 부제 : 구성적 상상력에 대한 논고
    저자 : 폴 벤느
    역자 : 김운비

  • 판형 : 148*225mm
    장정 : 무선
    면수 : 250쪽
    발행일 : 2002년 12월 16일
    가격 : 12,000원
    ISBN : 9788987350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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