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생명 기술(BT)과 정보 기술(IT)의 전례 없는 발전 속에서 생명은 점점 더 기계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고, 기계는 점점 더 생명의 속성을 띠고 있다. 한쪽에서는 현대 진화생물학자들이 생명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매우 기계적이어서 단순한 복제와 변이의 반복만으로 다양한 생명 형태를 생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21세기에는 ‘인간의 진화의 마지막 단계는 기계가 아닐까’라는 주제까지 등장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집어넣은 감정 인식 로봇이 대중에게 공개되었으며, 진지하게 로봇 장례식을 치르며 로봇의 ‘죽음’을 애도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러한 혼합과 혼종의 양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부여한다.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동식물, 기계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차이점은 무엇인가? 생명과 기계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차례

머리말

제1부 이론
1장 신체와 매체: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이 뒤섞일 때
2장 생명과 기계를 구분하는 세 가지 방식
3장 기계의 노동, 생명, 언어

제2부 사례
4장 회복의 느낌: 시몽동의 기술미학
5장 점으로 부서지는 세계: 플루서의 매체 이론
6장 선, 껍질, 분열증: 백남준의 전자 이미지

맺음말
각 장의 출처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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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기계와 생명이 서로 뒤섞인 지대에서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해명하다

철학, 예술, 과학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들뢰즈와 현대 프랑스 철학을 연구해온 이찬웅 교수(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는 이 책에서 이러한 현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인간과 기계, 생명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실천적인 관심을 위치시켜야 할지를 논한다. 기술적 포스트휴먼 시대에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미셸 푸코의 논의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과타리의 기계주의를 교차시키며 이론적 논의를 수립하는 한편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질베르 시몽동, 독일의 매체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이론과 한국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업을 통해 실천적 문제를 고려해보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생명과 기계의 특성이 교차하는 지대를 탐색하고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해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
오늘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때로는 기계로, 때로는 생명으로 이해된다

이 책의 제목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는 지은이가 들뢰즈의 ‘이접적 종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접적 종합이란 ‘A이거나 B이거나’라고 말할 때 A나 B 중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 둘 모두의 미시적 특성을 느끼며 오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접적 종합은 인지적 무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렇게 양쪽을 오가면서 감성의 변화와 지성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함축한다. 요컨대 이 책의 제목은 오늘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때로는 기계로, 때로는 생명으로 경계를 오가면서 이해되고 있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들뢰즈는 인간, 동식물, 기계 사이에서 종적, 본성상의 구분 대신 새롭게 확립된 동등성 위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포착하여 신체를 형상, 주체, 종(種)이 아니라 속도와 정동(affect)의 관점에서 파악하자고 제안한다. 들뢰즈의 신체론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뉘는데, ‘표현하는’ 신체와 ‘연결하고 작동하는’ 신체가 그것이다. 신체는 불활성화된 채로 죽어 있지 않으며, 언어 못지않게 무언가를 표현하고 정보를 발산한다는 것이다. 들뢰즈가 모든 신체는 무엇인가를 표현한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그의 이론을 매체 철학과 연관시키는 이 책은 이를 바탕으로 생명과 기계, 생태와 기술을 연속적이고 혼합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신체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신체와 매체가 서로 뒤섞이는 양상을 살피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인간과 기계 사이를 매개하는 인문학

오랫동안 신체는 인간이라는 모델에서 영혼에 대립하는 항, 영혼의 지배를 받는 항으로 규정되어왔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제 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신체의 모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생태의 필요성과 기계의 영향력에 대한 지각 속에서 신체의 경계가 다시 흐트러지고 새롭게 확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자 매체의 충격 속에서 생명과 기계가, 신체와 매체가 수렴해가는 것을 목격한 1960년대 백남준의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TV 화면 속 인물들은 이미지로 흔들리고(<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급기야 그의 설치-조각에서 신체 기관들은 TV를 운반한다(<징기스칸의 복권>, 1993). <TV 정원>(1974)에서 그가 인간-기술-자연이 함께 관여하는 생태계를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오늘날 인간의 거주는 생명권과 기계권(mecanosphere)이 지구의 표면 위에서 겹쳐지는 가운데 사유되고 자연과 인공은 식별 불가능한 영역으로 진입한다.

한편 유한한 기계 역시 무한한 피드백 회로 안에서 무한히 회귀하면서 생명과 비슷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로 인해 기계와 기술의 진보가 무조건적인 면책특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는데, 우리가 그동안 생명체와 인간에 대해 수립하려고 했던 가치와 규범을 기계에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공지능 채팅 로봇 테이는 극단적인 차별주의자가 할 만한 욕설을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만 했다. 말하자면 기계 역시 양육되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에 더해 인간적 이해 방식과 기계적 연산 방식 사이의 차이를 매개하는 것이 인문학의 인접 분야가 될 것이라고 이 책은 예상한다. 알파고의 예상 밖의 수를 두고 바둑 기사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인간과 기계 사이를 매개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명과 기계가 혼합되는 생태계 안에서 복합적인 과제를 설정하는 이 책은 우리가 생명과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지닌 다양한 잠재성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새로운 지각과 사유의 지평을 획득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이 책은 2부 6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에서는 이론 위주로 생명과 기계를 이해하는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면서 기존의 견해처럼 생명과 기계를 단순히 대립시키지 않고 둘의 특성이 교차하는 지대를 포착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생태-기술 연속체’를 탐색하는 시론 성격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장에서는 신체와 매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오늘날 생명과 기계가 점점 혼합되고 있는 의미와 양상을 해명한다. 2장에서는 생명과 기계를 구분하는 데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앞으로 우리가 여러 관점이 공존하는 체제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3장에서는 푸코, 그리고 들뢰즈와 과타리의 논의를 중첩시켜 앞으로는 노동, 생명, 언어라는 세 축을 기계적인 것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예증한다.

구체적인 분석을 담은 제2부는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를 포착하는 이론과 실천에 관한 것이다. 4장에서는 프랑스 기술철학자 시몽동의 기술미학을 통해 현대 미학이 정신성과 물질성 사이의 새로운 균형을 요구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5장에서는 독일의 매체철학자 플루서의 매체 이론을 참조해 인간 지각이 디지털화된다는 것의 내용과 의미를 다룬다. 6장에서는 유기체와 기술체를 과감하게 뒤섞었던 한국의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전자 이미지의 특성이 무엇인지 포착하고자 한다.

저자소개

저자 : 이찬웅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뤼미에르 리옹2대학교에서 영화학 석사를 마치고, 리옹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 예술, 과학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들뢰즈와 현대 프랑스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들뢰즈, 괴물의 사유』를 쓰고, 질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를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저자 : 이찬웅

  • 판형 : 140*210mm
    장정 : 무선
    면수 : 252쪽
    발행일 : 2021년 9월 10일
    가격 : 17,000원
    ISBN : 9788961473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