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관계

이타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결속시키는가?
시장의 우월성에 대한 통념을 파괴한 현대 사회학 분야의 중요한 고전

이 책은 영국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준 사회학 분야의 고전이다. 사회정책 분야의 선구자였던 리처드 티트머스는 이 책에서 자발적 헌혈자에 의존하는 영국의 헌혈 시스템과 영리기업이 혈액 공급을 관리하는 미국의 시스템을 비교하며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영국의 시스템이 더욱 안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타주의가 어떻게 사회를 결속시키는지를 보여준 그의 분석은 시장의 우월성에 대한 통념을 파괴하며 당시 사회에 강력한 충격을 선사했다. 지금처럼 의료 정책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보건 복지 체계가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시대에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줄 것이다.

 

차례

제1부 선물 관계 재검토
1장 개정판 서문
2장 영국의 에이즈와 선물 관계
3장 새천년의 수혈 의학

제2부 선물 관계: 인간의 혈액에서 사회정책까지
4장 서론: 인간의 혈액과 사회정책
5장 수혈
6장 잉글랜드와 웨일스 및 미국에서의 혈액 수요
7장 잉글랜드와 웨일스 및 미국에서의 혈액 공급
8장 선물
9장 미국 헌혈자들의 특징
10장 잉글랜드와 웨일스 헌혈자들의 특징
11장 선물은 좋은 것인가?
12장 혈액과 시장 법칙
13장 구소련과 기타 국가들의 헌혈자들
14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헌혈자의
동기에 대한 연구
15장 경제적 인간: 사회적 인간
16장 누가 나의 낯선 사람인가?
17장 헌혈할 권리

제3부 선물 관계: 새로운 시작
18장 어머니의 선물: 인간적인 친절의 우유
19장 후기

참고 문헌
옮긴이 해제: 티트머스의 『선물 관계』와 복지국가의 이론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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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만약 인간의 혈액에 시장 원리를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왜 ‘헌혈’을 할까? 왜 우리는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타인을 위해 혈액을 제공하는 것일까? 왜 혈액은 다른 상품과 달리 사고파는 게 아니라 ‘낯선 이에게 주는 선물’로서 남게 된 것일까?

한 사회가 가진 헌혈 시스템은 혈액에 대한 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혈액을 시장 원리로부터 떼어놓은 것은 인류가 달성한 중요한 인간적, 문화적 성취 중 하나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이론가이자 열렬한 옹호자인 리처드 티트머스는 1970년에 펴낸 『선물 관계』를 통해 이타주의에 기반한 헌혈 시스템이 가지는 커다란 사회적 의미를 규명했고, 이 책은 이후 지금까지 영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헌혈 시스템과 복지국가 이론을 지켜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영국의 복지국가와 헌혈 시스템을 지켜낸 보루,
리처드 티트머스의 선물 관계

1970년 무렵 영국에서는 ‘고전적’ 복지국가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아직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보수적 사회정책이 등장해 주요 ‘복지’ 제도가 공격을 받고 있었다. 특히 시장주의의 이념적 보고였던 경제문제연구소는 1960년대 내내 헌혈 시스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영국의 복지국가와 1948년 이래로의 국영보건서비스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서 티트머스는 시장 원리로부터 지켜내야 할 방어선으로서 ‘인간의 혈액’을 발견하였다. 그는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헌혈 시스템을 비교 연구하여 시장 원리에 대한 맹신을 허물고 한편으로는 사회정책의 존립을 위한 논거를 구하고자 하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혈액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었고 영리를 추구하는 혈액은행들이 많이 존재했다. 티트머스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혈액을 상품으로 취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통렬한 설명을 제시했고, 더 나아가 “이타주의는 도덕적으로도 건전하고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다”라는 놀라운 주장을 내놓았다.

『선물 관계』는 당시 영국과 미국의 정계,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헌혈 시스템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서양 양쪽의 경제학자들은 이 책의 주장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고,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1971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았다. 미국의 닉슨 행정부는 티트머스의 자문을 받아 실제로 헌혈 시스템을 개혁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영국에서는 이 책의 출간 이후 자발적 헌혈의 원칙들이 광범위하게 수용되었고 후일 대처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에도 헌혈 시스템만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타주의에 기반한 헌혈 시스템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이다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혈액의 공급을 다른 방식으로 제도화한 두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국에서는 혈액의 공급자에게 어떠한 보수도 지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가 혈액의 공급과 분배를 관리하고 있다. 반대로 B국에서는 거의 모든 혈액 공급자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간 주체들이 혈액의 공급과 분배를 책임지고 있다. 그렇다면 두 나라 가운데 어느 나라의 혈액이 더 양질의 혈액일까? 또 어느 나라의 헌혈 시스템이 더 효율적일까?

경제학에 따르면 명백히 B국의 혈액이 질적으로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하고, 수요에 더 정확하게 대응하고, 낭비를 훨씬 덜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A국에서는 양질의 혈액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었지만, B국에서는 질이 나쁘고 오염된 혈액이 유통되어 혈청간염, 매독, 말라리아 등 질병이 퍼졌고 만성적인 공급 부족 문제가 발생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혈액 가격 면에서도 B국은 A국보다 5-15배 더 비쌌고, 혈액의 폐기율도 A국은 2%에 그쳤지만 B국은 약 30%에 달했다.

물론 여기서 A국은 영국이고 B국은 미국이다.

이타주의에 기반한 헌혈 시스템이 도덕적으로도 더 건전하다

티트머스가 조사한 1967년까지 영국에서는 혈액 공급량이 사회 전체적으로 매년 6-7%씩 꾸준히 늘었다. 신규 헌혈자도 꾸준히 늘었다. 이러한 헌혈자 수의 지속적인 증가 덕분에 영국은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혈액 수요의 증가에 잘 대처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에서는 1956년 이래 1967년까지 혈액 공급이 증가하긴 했으나 1960년대 들어 증가세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신규 헌혈자의 비율 또한 영국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미국의 헌혈 시스템이 이미 만성적인 혈액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이런 결과는 일종의 파산선고라고 할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의 헌혈자들은 99%가 자발적 헌혈자인 반면 미국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7-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자발적 헌혈자의 비율이 원래부터 그렇게 낮았던 것은 아니었다. 또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자발적 헌혈자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중요한 혈액 공급원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960년대 말 미국의 헌혈 시스템은 국가적으로 90% 이상의 혈액을 ‘보수를 받는 헌혈자’, ‘조건부 헌혈자’, ‘반강제적 헌혈자’에게 의존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영국의 헌혈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이타주의를 키웠지만 미국의 시스템은 오히려 이타주의를 축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물의 순환이 만드는 사회적 결속

‘헌혈’은 ‘혈액이라는 선물’을 ‘낯선 이’에게 베푸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도 ‘선물’은 그것을 증정하는 것만으로도 보상이 보장된다. 왜냐하면 선물을 받은 쪽에서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티트머스가 자발적 헌혈자로 분류한 99%의 사람들도 완전한 의미에서 이타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처음 헌혈자가 되기로 한 이유를 말해주세요”라는 설문 문항에 대해 3,800명의 사람들은 온갖 사연을 담았다. 이타주의, 건강의 나눔, 호혜, 헌혈 요청에 대한 응답, 단순한 의무감, 전쟁에서의 경험, 미래에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거라는 기대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의 간섭이나 강요도 받지 않았고 막연한 기대 이상의 보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이타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영국의 헌혈 시스템에서는 ‘선물 관계’가 주고받는 관계로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들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인간사의 한 작은 부분인 ‘혈액’에서 시작한 연구는 이처럼 사회정책을 넘어 복지국가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 필수적인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탐구로 나아간다. 티트머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아야 하며 그것은 사회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시장은 사람들에게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한 사회가 어떻게 사회제도를 조직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이타주의는 강화될 수도 있고 약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사회가 성공적으로 인간의 이타주의를 강화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크게는 사회정책과 복지국가의 근간이, 작게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결속이 자연히 영향을 받는다.

아직 혈액이라는 선물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헌혈자들이 내놓는 혈액은 그들의 생명의 일부이다. 헌혈자들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혈액을 내놓지만 그것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 알지 못하고 상관하지 않는다. 의사는 누구에게 혈액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하고, 환자는 피를 수혈받는다. 이로써 ‘혈액이라는 선물’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 과정에서 피부색, 종교적 신념, 문화적 유산의 차이는 고려되지 않는다. 피는 생명의 물줄기이자 ‘혈액이라는 선물’로서 모든 인류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인간 가족’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의학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생명을 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그에 따라 혈액에 대한 수요도 새롭게 늘어났다. 하지만 의학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혈액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인공 혈액은 티트머스의 시대에도 오늘날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에도 기술은 진짜 인간의 피와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누군가의 ‘혈액이라는 선물’만이 ‘낯선 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리처드 M. 티트머스

20세기 후반 영국 복지국가를 설계한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사회정책 분야에 국제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복지국가, 사회정책, 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책과 논문을 출간했다. 주요 저서로 보편적 사회서비스에 관한 독창적 이론을 제공하여 사회민주주의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는 『선물 관계』를 비롯하여 『복지의 의무(Commitment to Welfare)』, 『소득분배와 사회변동(Income Distribution and Social Change)』, 『복지국가론(Essays on the Welfare State)』, 『사회정책의 문제들(Problems of Social Policy)』 등이 있다.

엮은이 : 앤 오클리

런던대학 교육학연구소 사회학과 사회정책학 교수로, 리처드 티트머스의 딸이자 유고의 관리자이다. 보건, 젠더, 가족 분야의 책과 논문을 출간했다.

엮은이 : 존 애슈턴

리버풀대학의 공공 보건 정책과 전략 학부의 석좌교수로, 공공 보건, 건강 도시, 낙태 등을 주로 연구하였다.

역자 : 김윤태

고려대학교 공공정책대학 공공사회학부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교수이다. 고려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 빈곤, 불평등, 시민권, 복지국가에 관한 책과 논문을 출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사회학, 사회발전론, 사회정책, 사회학이론 등이다.

역자 : 윤태호

부산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다. 동아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서 예방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건강 불평등, 공중 보건, 의료 정책 등이다.

역자 : 정백근

경상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이다. 동아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공공 의료, 건강 불평등, 지역 보건 등이다.

  • 부제 : 인간의 혈액에서 사회정책까지
    저자 : 리처드 M. 티트머스
    편자 : 앤 오클리·존 애슈턴
    역자 : 김윤태·윤태호·정백근

  • 판형 : 153*225mm
    장정 : 무선
    면수 : 519쪽
    발행일 : 2019년 9월 10일
    가격 : 30,000원
    ISBN : 9788961473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