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된 거미

이야기로서의 신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꾼을 거쳐 오면서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기존 내러티브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도니거는 여러 신화를 비교해봄으로써 이처럼 신화 속에 끼워 넣어진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때로 남성의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성의 텍스트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동일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역사를 더듬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작업은 사실상 각 신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니거는 새로운 비교신화학은 결코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는 보편주의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비교신화학자의 모습은 각 문화 간의 차이와 유사성 사이에 놓인 이야기라는 팽팽한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일상과 학문의 언어를 가로지르는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서술로 다양한 비교와 메타포의 의미를 역설하는 이 책은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흥미로움을 가져다주며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이 줄타기의 긴장감을 함께 즐기도록 이끈다.

차례

개정판 서문: 컨텍스트와 역사
감사의 말
서론: 신화와 메타포

1장 현미경과 망원경

텍스트의 렌즈로서의 신화
신화에 대한 학자의 렌즈
「욥기」와 『바가바타 푸라나』에 나타난 신학적 렌즈로서의 신화
신학적 렌즈로서의 신화
정치적 렌즈로서의 신화
인간적 렌즈로서의 신화

2장 검은 고양이, 짖는 개, 수레 그리고 칼

검은 고양이들의 차이
짖지 않는 개
같은 옛이야기
컨텍스트
전체와 부분들: 수레와 칼

3장 암시된 거미와 개별주의의 정치학

보편주의자의 문제
비교 문화적 결론
암시된 거미
비교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포스트모던적 비판
신화학의 예술과 과학

4장 미시 신화, 거시 신화 그리고 다성성

관점이 없는 신화
많은 목소리
미시 신화와 거시 신화
관점이 있는 신화
전도된 정치적 판본들
현대의 신화적 텍스트에 대한 전도된 정치적 독해

5장 마더 구스와 여성의 목소리

늙은 아낙네들의 이야기
여성의 관점
여성 텍스트 속 남성의 목소리
남성 텍스트 속 여성의 목소리
양성구유적 언어
여성의 목소리 구하기

6장 텍스트의 다원주의와 학문의 다원주의

원형
전파와 잔존
마음속 더러운 넝마 가게
브리콜라주 버스에서 내리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회춘
일흔 개의 다른 해석들
멀티 대학교
줄타기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소개

신화라는 거미줄을 자아내는 인간의 공통된 경험,
신화 속에 숨어 있는 암시된 거미의 존재를 밝힌다!

오늘날 신화는 비단 학자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세계 여러 신화 속 이야기들이 베스트셀러 소설의 소재로 사용되고, 영화 속에서도 각종 신화적 모티브들이 수시로 등장하며, 잘 팔리는 컴퓨터게임 역시 신화 속 이야기와 신화의 주인공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분명 현대 문화 속에는 세계 여러 신화가 뒤섞여 있고, 우리는 이처럼 알게 모르게 여러 신화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 다양한 전통의 신화들에 대한 비교 연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주제이다.

미국 시카고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엘리아데 석좌교수 역임)하다가 2018년 말 은퇴한 저명한 종교학자 웬디 도니거는 이 같은 다양한 전통의 신화들을 서로 비교하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그녀는 1968년 하버드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인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3년 옥스퍼드대학에서 다시 동양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인도신화에만 관심을 국한하지 않고 인도신화와 그리스신화의 비교 작업을 주축으로, 세계 여러 종교 전통과 문학, 예술, 심지어 현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유사한 신화적 주제들에 대한 비교 연구를 계속 진행해왔다.

도니거의 비교에 대한 애착과 긍정적 믿음은 세계 여러 곳에서 ‘서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실제로 발견된다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도니거는 이 같은 엇비슷한 이야기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인간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한 경험, 비슷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온 삶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무리 비교 문화적인 비교에 대해 칼날을 세우고 있는 이들이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에서 비롯된 유사한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니거는 이러한 유사한 이야기, 유사한 개별 신화들을 만드는 인간의 공통적 삶의 정황, 혹은 공통된 경험의 전달자를 거미에 비유한다. 이 거미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확실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이 거미로부터 신화를 만드는 것들이 발생되고, 그러기에 거미는 신화를 만드는 것들에 의해 암시되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도니거는 이 거미를 “암시된 거미implied spider”라 부른다.

“암시된 거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뽑아낸 실로 세계를 방출해내는, 우파니샤드 속 신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도니거는 모든 신화의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거미가 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본성과 경험으로서, 이야기꾼들은 이로부터 끊임없이 거미줄을 짤 원료, 즉 계속해서 신화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원천을 공급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우리 눈에는 이들이 만들어낸 거미줄만 보일 뿐 거미의 존재는 보이지 않지만 이 거미줄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한 숨은 거미의 존재, 즉 인류의 공통된 경험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의 신화들을 왜 비교해야 하며, 어떻게 비교해야 하는가?

도니거의 신화 연구가 특히 주목받았던 이유는 그녀가 20세기 말 종교학계에서 제기되었던 비교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신화의 비교 문화적 비교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또 이러한 연구를 직접 행했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전통의 다양한 신화를 보편적인 틀 안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융이나 엘리아데 등의 비교신화학은 여러 신화 간의 유사성, 다양한 신화 속의 공통적인 요소를 찾는 데만 주력한 나머지 각 전통, 시대,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신화의 차이들을 발견하고, 그 차이들 가운데서 각각의 신화가 놓인 맥락, 즉 컨텍스트를 짚어내는 데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러한 보편적인 틀, 신화의 유사성만을 강조해온 비교 연구가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신화의 비교 연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감돌게 되었다. 도니거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비교신화학에 대한 비판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는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이 책 암시된 거미: 신화 속의 정치와 신학은 비교신화학에 대한 비판들을 검토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신화학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한 도니거의 대표적인 신화학 이론서이다.

 

신화를 통해 인간적인 현미경과 우주적인 망원경의 두 시각으로 세상을 보다

인간의 공통된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야기되는 방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도니거는 이렇듯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신화들을 비교해보면 한 가지 신화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 유사한 내용을 다룬 신화들이라 할지라도 한 신화 속에서는 이야기되지만 다른 신화 속에서는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이야기, 구체적인 내러티브 속의 이 같은 세세한 차이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각 신화들의 세부적인 차이를 음미해봄으로써 나의 신화에서는 꿈꿀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화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 반대로 나의 신화에서는 꿈꿀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신화에서는 꿈꿀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낯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세계관 속에서는 지극히 당연시되기에 그것에 대해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을 다시 보게 되고, 이로써 새로운 사고의 문을 여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신화는 한꺼번에 인간사의 만화경 양 끝을 통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즉 우리 자신의 시선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개인적이고 세세한 일들을 보면서 동시에 다른 문화의 눈으로 주어지는 망원경을 통해 대단한 힘을 가진 자의 대단한 업적마저도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드는, 말하자면 욥과 우리 자신의 고통을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드는 광대한 파노라마를 볼 수 있게 해준다. 위기에 처한 인간존재에 관한 신화적 차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 어떻게 말해주는지를 귀 기울여 듣고 생각해볼 때마다 우리는 잠시나마 인간적인 현미경과 우주적인 망원경의 두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본문 78쪽).

 

일상과 학문의 언어를 넘나드는 유쾌한 서술로 신화 속의 다양한 목소리를 탐색한다

이처럼 도니거에게 있어서 신화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야기’이다. 물론 도니거는 신화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를 주저한다. 이는 그녀 자신의 말대로 그녀가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구술하기보다는 신화는 무엇을 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를 정의한다는 것은 내가 언제나 기피해왔던 경계와 장벽 따위를 쌓아올리는 일을 요구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경계 짓기, 장벽 쌓기에 도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니거는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화는 신화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신성시되고 공유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도니거는 신화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이미 플라톤이 신화를 비판하던 시대에도 유모들이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옛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들은 입에서 입으로, 혹은 여러 텍스트 사이를 떠돌면서 전해져왔고 이제는 스크린 속에서도 떠돌고 있다. 도니거는 이야기가 갖는 힘이 바로 신화를 오랜 세월 동안 잊히지 않게 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원형보다는 구체적인 표현들을, 구조보다는 내러티브를 더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로서의 신화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꾼을 거쳐 오면서 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변형되고 때로는 기존 내러티브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도 한다. 도니거는 여러 신화를 비교해봄으로써 이처럼 신화 속에 끼워 넣어진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것은 때로 남성의 텍스트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고, 반대로 여성의 텍스트에서 남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동일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어온 역사를 더듬어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작업은 사실상 각 신화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니거는 새로운 비교신화학은 결코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는 보편주의로의 환원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비교신화학자의 모습은 각 문화 간의 차이와 유사성 사이에 놓인 이야기라는 팽팽한 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일상과 학문의 언어를 가로지르는 유쾌하면서도 섬세한 서술로 다양한 비교와 메타포의 의미를 역설하는 이 책은 한 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흥미로움을 가져다주며 독자로 하여금 기꺼이 이 줄타기의 긴장감을 함께 즐기도록 이끈다.

저자소개

저자 : 웬디 도니거

힌두교와 비교신화학을 주 전공으로 하는 미국의 종교학자다. 2018년까지 시카고대학 종교학과에서 재직하며 엘리아데 석좌교수를 지냈고, 남아시아 언어 및 문명학과와 사회사상 연구위원회에서도 교수로 활동했다. 1940년 뉴욕에서 유대계 부모 밑에서 태어난 도니거는 1968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시바 신화의 금욕주의와 섹슈얼리티」로 박사 학위를 받고, 이어 1973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힌두 신화 속 이단의 기원」이라는 논문으로 또 다른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힌두 신화 원전 자료집』을 비롯해서 『리그베다』, 『마누법전』, 『카마수트라』 등 힌두교 원전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으며, 『힌두교: 또 다른 역사』, 『힌두교에 관하여』 등 힌두교 전반을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서술하는 작업도 해왔다. 한편 『여성, 양성구유, 다른 신화적 짐승들』, 『꿈, 환영, 다른 실재들』, 『다른 사람들의 신화』, 『암시된 거미: 신화 속의 정치와 신학』, 『차이의 분할: 고대 그리스와 인도의 젠더와 신화』, 『베드 트릭: 성과 변장에 관한 이야기』 등의 신화학 및 비교신화학 저서들을 통해 하나의 종교 전통, 신화 전통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의 종교적 텍스트와 신화를 서로 비교하는 작업을 해왔다. 도니거는 종교학의 중요한 이슈인 전통 문헌 연구와 비교 연구 양자를 모두 아우르며, 컨텍스트를 중시하는 연구와 비교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역자 : 최화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로마 시대 점술론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순례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수년간 “종교와 영화”, “종교와 예술”을 강의하고 있으며, 신화와 의례 등의 종교현상을 영화, 미술, 건축, 문학, 여행 등 다양한 문화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이를 통해 종교 문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화, 신화담론, 신화 만들기』, 『종교, 미디어, 감각』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신화 이론화하기: 서사, 이데올로기, 학문』, 『마야: 삶, 신화 그리고 예술』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점술의 사유와 이미지 사유」, 「신화, 유령, 잔존하는 이미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를 중심으로」, 「신화의 변형과 재창조: 오이디푸스 신화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