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신화 이론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화 이론가인 카시러, 말리노프스키,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이론을 “만들어진 신화”, “20세기의 가공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조명해 20세기 서양의 욕망과 서양의 존재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서양적 사유 틀에 매몰되는 우리의 욕망과 존재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신화는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진실한 이야기이거나 거짓말일 수도 있고, 계시이거나 속임수일 수도 있고, 성스러운 것이거나 저속한 것일 수도 있고, 참이거나 허구일 수도 있고, 상징이거나 도구일 수도 있고, 신선한 원형이거나 진부한 반복형일 수도 있다.

그것은 대단히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감정적이고 전-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전통적이고 원시적인 것이거나 현대의 이데올로기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백과사전의 신화 항목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화에 대한 정의이다.

신화학자, 종교학자, 문화학자로서 영미 학계의 중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은이 이반 스트렌스키는 이러한 정의에 대해 부정적이다. “신화”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너무 많기도 하고 모순적이어서, 신화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결과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사물 대신에 “신화”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고 판매하는 산업이 번창한다. “신화”는 마법에 걸린 외양을 띠거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신화 공장 안에서 힘들여 창조한 구조물의 모습을 띠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환상illusion”에 불과하다.

만들어진 신화 문헌은 다시 크게 두 개의 범주, 즉 신화에 대한 “비판적” 이론과 신화를 “응용한” 글쓰기로 나뉜다. 첫째 범주에 속하는, 신화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신화에 대해 가지는 근본 가정들, 즉 “신화”의 의미는 무엇이며, 따라서 그것은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가를 탐색한다.

둘째 범주에 속하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문화에서 사용되는 그 “신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신화의 의미에 대한 개념적 탐색은 접어두고, 신화가 주는 아이디어들을 이용하는 데 만족한다. 이러한 글쓰기의 예는 예술, 문학, 정치 그리고 종교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크게 유행했고 지금도 관심이 많은 “그리스로마 신화”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 중 첫째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을 조명한다. “신화”에 대한 주요한 관점들과 이론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20세기의 주요한 신화 이론가들이 전제하는 더 큰 범위의 이론적이고, 직업적이고, 문화적인 기획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카시러, 말리노프스키,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현대의 중요한 네 사상가는 20세기 유럽의 파국적인 정치적 격변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향을 잃은 “난민”이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모두), 아니면 유대인과 좌파에 대한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카시러와 레비스트로스), 또 아니면 민족주의와 정치적 우파에 대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엘리아데) 강제적 이주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이론은 언뜻 보면 전혀 유사성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연구직으로부터 내몰려서 외부 환경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동기가 있었다. 따라서 신화 이론을 살펴봄에 있어서 그들의 이론이 탄생되고 발전된 과정 그 자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은 20세기 신화 이론을 둘러싼 맥락이 어떠했는지,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서 “신화 이론”이 어떠한 정교한 체계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발견할 수 있다.

신화가 “정서적 통일성”이라는 일원론적 원리에 의해 “하나로 묶이는” 이야기라고 했던 카시러는 19세기적 계몽의 뿌리인 칸트 사상의 계승자로서, 나치의 발흥이라는 시대 한가운데를 살았다. “실용적 이야기”로서의 신화를 주창했던 말리노프스키는 프레이저에서 시작된 초기의 인류학이 본격적인 학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의 획을 그은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서양에 의한 비서양의 지배를 당연시하고 그것을 보조하는 지식, 이론으로서의 인류학을 구축했다.

신화를 “창조 이야기”라고 했던 엘리아데는 젊은 시절 루마니아 우파 민족주의의 신봉자였으며 복잡한 여정을 거쳐 미국에서 종교학이라는 학문 분과의 대부가 된 인물이다. 엘리아데는 그의 삶 자체가 20세기 서양 정신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이력을 갖고 있다.

신화를 “강력하게 구조화된 이야기”라고 정의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에 대한 보편 이론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구조주의의 선봉에 섰으며, 뒤르케임 이후의 프랑스 민족학을 계승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복잡한 사상적, 이론적 여정을 거친 인물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국가의 학문 전통, 서로 다른 학문적 원리, 나아가 전혀 다른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상황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지만, 20세기 유럽에서의 삶이라는 일반적인 틀은 그들의 경험 및 그들의 이론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만든 이론은 정상적인 학문적 활동이 불가능했고 역사적으로 한정된 20세기 전반의 유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제약을 받는 “가공물”이었다.

네 이론의 대가들을 상대화시키고, 맥락화시킴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 이론을 구상했는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이론은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며, 어떤 상황적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를 말한다.

학문적인 이론이 신화가 되어버리고, 그 신화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사람들, 학자들, 논문을 쓰는 젊은이들, 혹은 이론적 호사가들은 신화화된 이론을 따르고 숭배하고 절대화한다. 그렇게 학문의 서클이 만들어지고, 학파가 만들어지고, 추종자가 만들어지고, 이론 산업이 만들어지고, 권력이 형성된다.

신화화된 ‘이론’을 그 이론이 만들어진 상황(맥락) 속으로 되돌리고, 객관화하며 그 신화를 상대화한다. 즉 신화를 ‘비신화화’한다. 상황 속으로 되돌리기, 맥락 안으로 돌려놓기는 대단히 힘 있고 중요한 ‘비신화화’의 전략이다. 신화는 상황화, 맥락화를 통해 탈신화화되고, 마침내 해체될 수 있다. 역으로 상황화와 맥락화를 거부하는 모든 것은 ‘신화화’의 길을 걷는다.

 

차례

감사의 말

1. 서론: “신화”를 둘러싼 문제
2. 에른스트 카시러: 정치 신화와 원시적 실재들
3.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실용적, 낭만적 신화학자
4. 엘리아데와 20세기 루마니아에서의 신화
5. 엘리아데의 신화 이론과 “종교사”
6. 레비스트로스 그리고 뒤르케임학파의 신화 이론
7. 지질학적 시간 안에서의 사상: 구조주의와 정치 신화
8. 결론: 신화 이론, 20세기의 가공물

약어표
옮긴이의 말_’이론’과 ‘신화’의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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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세계화’ 시대에 왜 “20세기 신화 이론”을 들먹이는가?

오늘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는, 불행하게도, 우리식으로, 우리의 정신으로, 우리의 사유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 자신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서양식으로, 서양의 정신으로, 서양의 사유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쓰는 주요 용어와 개념, 사유 틀은 다 서양의 것이며, 적어도 서양화를 거친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가졌던 정신과 사유는 지난 100년 동안에 서양과의 투쟁에서 하나씩 패배함으로써 결국 오늘 우리는 우리의 것은 다 잃고 서양의 것으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말하고, 글 쓰고, 놀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 지구에 대한 서양 문명의 지배가 확대되고, 그 지배가 철저하게 뿌리를 내린 세기가 20세기였다. 즉 서양적 사유가 보편화되고 서구적 삶이 일상화된 세기가 20세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이 소위 ‘세계화’였다. 서양적 사유와 그것에 근거한 ‘서양적 문명화’의 이념은 세계화의 논리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화’되고자 안달복달했지만, ‘세계화’가 안 되면 다 낙오된다고 공갈협박당했지만 결국은 최종적으로 서양에 먹힌 것이라고 보는 것이 부끄럽지만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서양은 학문과 과학, 즉 이론이라는 지적 근거를 확보하고, 비서양에 대한 지배를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어나갔는데, 이 전통은 20세기에 완성되었다. 즉 20세기는 명실 공히 서양이 비서양을, 세계(인간)를 서양적 ‘사유 틀’ 안으로 삼켜버리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의 핵심에 ‘신화’, ’20세기 신화 이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화 이론가인 카시러, 말리노프스키,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이론을 “만들어진 신화”, “20세기의 가공물”이라고 비판적으로 조명함으로써 20세기 서양의 욕망을, 20세기 서양의 존재 방식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이는 결국 오늘 우리로 하여금 서양적 사유 틀에 매몰되고 있는 우리의 욕망과 존재 방식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이 ‘세계화’ 시대에 “20세기 신화 이론”을 들먹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0세기 신화 이론, 어떻게 만들어졌나?

“신화는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정말로 진실한 이야기이거나 거짓말일 수도 있고, 계시이거나 속임수일 수도 있고, 성스러운 것이거나 저속한 것일 수도 있고, 참이거나 허구일 수도 있고, 상징이거나 도구일 수도 있고, 신선한 원형이거나 진부한 반복형일 수도 있다. 그것은 대단히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감정적이고 전-논리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전통적이고 원시적인 것이거나 현대의 이데올로기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백과사전의 신화 항목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화에 대한 정의이다.
신화학자, 종교학자, 문화학자로서 영미 학계의 중진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 책의 지은이 이반 스트렌스키는 이러한 정의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신화”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너무 많기도 하고 모순적이어서, 신화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무엇”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 결과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사물 대신에 “신화”라고 불리는 것을 만들고 판매하는 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는 마법에 걸린 외양을 띠거나,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신화 공장 안에서 힘들여 창조한 구조물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의 “환상illusion”에 불과한 것이다. 이국적이고 태곳적임을 가장하는 신화 산업은 사실 인문학 영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을 만들어낸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그 “물건”은 현대의 “신화” 문헌을 뒷받침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화 문헌은 다시 크게 두 개의 범주, 즉 신화에 대한 “비판적” 이론과 신화를 “응용한” 글쓰기로 나뉜다. 첫째 범주에 속하는, 신화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신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근본 가정들, 즉 “신화”의 의미는 무엇이며, 따라서 그것은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가를 탐색한다. 둘째 범주에 속하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문화에서 사용되는 그 “신화”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신화의 의미에 대한 개념적 탐색은 접어두고, 신화가 주는 아이디어들을 이용하는 데 만족한다. 이러한 글쓰기의 예는 예술, 문학, 정치 그리고 종교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크게 유행했고 지금도 관심이 많은 “그리스로마 신화”류가 여기에 들어간다.
이 책은 첫째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들을 조명한다.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주요한 관점들 그리고 이론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20세기의 주요한 신화 이론가들이 전제하고 있는 보다 더 큰 범위의 이론적이고, 직업적이고, 문화적인 기획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은 그 작업을 카시러, 말리노프스키, 엘리아데, 레비스트로스로 대표되는 현대의 중요한 네 사람의 신화 이론가의 경우를 검토하면서 수행한다.
이 네 사상가는 그들의 이름 자체가 신화에 대한 하나의 이론으로 간주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그야말로 신화학계의 대가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상가이고 이론가인지를 알기 위해서 이 책을 집어 들면 곤란하다. 오히려 그들의 이론은 이 책에서 철저한 분석의 대상이 된다. 이 책은 그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 이론을 구상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이론은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며, 어떤 상황적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철저하게 파헤친다.
이 네 사상가는 20세기 유럽의 파국적인 정치적 격변과 절대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각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향을 잃은 “난민”이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모두), 아니면 유대인과 좌파에 대한 나치의 탄압으로 인해(카시러와 레비스트로스), 또 아니면 민족주의와 정치적 우파에 대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인해(엘리아데) 강제적 이주를 경험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이론은 언뜻 보면 전혀 유사성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연구직으로부터 내몰려서 외부 환경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동기가 있었다. 따라서 신화 이론을 살펴봄에 있어서 그들의 이론이 탄생되고 발전된 과정 그 자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은 20세기 신화 이론을 둘러싼 맥락이 어떠했는지,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서 “신화 이론”이 어떠한 정교한 체계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로부터 콘텍스트로의 전환, 신화 이론 읽기의 새로운 방법론

“책의 저자들이 자기들이 살았던 시대의 지적이고 문화적인 흐름과 분리되어, 어떤 수도원의 골방에서 창조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어디에 쓰여 있는가?”

어쩌면 지은이가 던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뻔히 정해져 있지만, 이 질문이 갖고 있는 함의는 매우 크다. 이론가들이 바깥세상을 무시한 채 골방에만 앉아서 책을 쓰지는 않듯이, 그들의 이론 또한 그들의 삶을 벗어나서 전개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신화 이론을 분석하는 방법론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명 “텍스트로부터 콘텍스트(맥락)로의 전환”이다.
콘텍스트는 “내적인” 콘텍스트와 “외적인” 콘텍스트로 나뉠 수 있는데, 내적인 콘텍스트는 이론가들의 직업적 활동을 포함한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고, 외적인 콘텍스트는 정치적, 종교적, 예술적, 경제적, 나아가 그 이외의 여러 영역을 포괄하는 더 넓은 문화적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콘텍스트는 이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전기적인 “배경” 지식이나 소위 퍼레이드적 전시물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세부 사항들의 집합이다. 틴 스키너는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기를 의도하는가와 그 의미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기를 의도하는가를 동시에 파악하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콘텍스트는 그 두 차원의 의도를 다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이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신화에 대해 글을 쓰는 레비스트로스에게 정말로 중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들과 관련된 콘텍스트를 파악했다면 마침내 왜 그들은 신화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그런 방식으로 신화에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방법론은 인간 행위와 사유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콘텍스트는 어떤 그림이었나?

그렇다면 이 책에서 주목하는 네 이론가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지은이는 이 네 인물을 그들이 처한 사회적, 정신사적, 정치적 맥락 안에 되돌려놓고, 그들의 사상과 이론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그 결과 언뜻 상호 연관 관계가 드러나지 않던 수많은 사상가, 학파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 드러나고, 결국 그 네 학자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 환경이 20세기의 서양의 지적 지도 안에서 하나의 연속된 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화가 “정서적 통일성”이라는 일원론적 원리에 의해 “하나로 묶이는” 이야기라고 했던 카시러는 19세기적 계몽의 뿌리인 칸트 사상의 계승자로서, 나치의 발흥이라는 시대 한가운데를 살았다. “실용적 이야기”로서의 신화를 주창했던 말리노프스키는 프레이저에서 시작된 초기의 인류학이 본격적인 학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의 획을 그은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서양에 의한 비서양의 지배를 당연시하고 그것을 보조하는 지식, 이론으로서의 인류학을 구축했다. 신화를 “창조 이야기”라고 했던 엘리아데는 젊은 시절 루마니아 우파 민족주의의 신봉자였으며 복잡한 여정을 거쳐 미국에서 종교학이라는 학문 분과의 대부가 된 인물이다. 엘리아데는 그의 삶 자체가 20세기 서양 정신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채로운 이력을 갖고 있다. 신화를 “강력하게 구조화된 이야기”라고 정의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에 대한 보편 이론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구조주의의 선봉에 섰으며, 뒤르케임 이후의 프랑스 민족학을 계승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복잡한 사상적, 이론적 여정을 거친 인물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국가의 학문 전통, 서로 다른 학문적 원리, 나아가 전혀 다른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상황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지만, 20세기 유럽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틀은 그들의 경험 및 그들의 이론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만든 이론은 정상적인 학문적 활동이 불가능했고 역사적으로 한정된 20세기 전반의 유럽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해 제약을 받는 “가공물”이었다.

인문학의 가치: 신화의 비신화화, 신화의 해체

이 책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지은이가 그 네 사람의 대가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들이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이 책의 지은이에게 공감하고, 그의 방법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그 이론의 대가들을 상대화시키고, 맥락화시킴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어떤 맥락에서 왜 그런 이론을 구상했는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이론은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며, 어떤 상황적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를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이론이 신화가 되어버리고, 그 신화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사람들, 학자들, 논문을 쓰는 젊은이들, 혹은 이론적 호사가들은 신화화된 이론을 따르고 숭배하고 절대화한다. 그렇게 학문의 서클이 만들어지고, 학파가 만들어지고, 추종자가 만들어지고, 이론 산업이 만들어지고, 권력이 형성된다. 이 책의 지은이, 스트렌스키는 신화화된 ‘이론’을 그 이론이 만들어진 상황(맥락) 속으로 되돌리고, 객관화하며 그 신화를 상대화한다. 즉 신화를 ‘비신화화’한다. 상황 속으로 되돌리기, 맥락 안으로 돌려놓기는 대단히 힘 있고 중요한 ‘비신화화’의 전략이다. 신화는 상황화, 맥락화를 통해 탈신화화되고, 마침내 해체될 수 있다. 역으로 상황화와 맥락화를 거부하는 모든 것은 ‘신화화’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고착된 신화가 바로 ‘도그마’다.
학자의 존재 이유는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민중이 깨어 있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선동가들과 장밋빛 미래를 그려내어 민중을 호도하고 등치는 정치가, 그들을 도와 그 장밋빛 미래가 진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사이비 학문이 판을 치는 마당에, 그들이 만든 ‘신화’를 해체하고 더 인간의 삶에 다가가는 진정성을 가진 ‘이론’을 만드는 작업은 학자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이론이 다시 신화화되는 길을 걷는다고 해도, 거쳐야만 할 길이다. 외국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단순히 추종하는 것이 학자의 특권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우리의 풍토에서, 많은 추종자를 가진 본바닥의 이론을 해체하는 작업은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비판에 대해서 그 비판을 다시 비판하는 새로운 논의가 제시되면서 지식은 발전한다. 破와 破의 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비판과 옹호의 상호 작용을 통해 더 나은 이론이 나타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더 나은 이해가 가능해진다. 돈도 되지 않고, 실용성도 없어 보이는 학문을 위해 사회가 투자를 하는 이유는, 건강한 비판, 즉 ‘신화’ 해체의 작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낡은 이론, 낡은 신화는 죽고 새로운 이론, 새로운 신화가 나타난다. 그런 무한한 반복과 회귀를 통해 삶은 성숙하고, 사회는 성숙한다. 거기에 인문학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저자소개

저자 : 이반 스트렌스키(Ivan Strenski)

미국에서 태어나 캐나다, 영국 등에서 공부를 한 후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는 종교학자, 문화학자, 신화학자이다. 신화론, 종교론 등을 비롯하여, 프랑스 사회학 및 인류학, 유럽의 지성사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현대의 이론을 해체하고 그것의 문화적 맥락을 살피는 작업을 주로 하는 지은이는 종교와 정치, 테러리즘, 세계화 등 현대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많은 글을 발표하고 있다.

역자 : 이용주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교수. 주요 저서로 『주희의 문화이데올로기』, 『생명과 불사 ─ 포박자 갈홍의 도교사상』, 『동아시아 근대사상론』, 『죽음의 정치학 ─ 유교의 죽음 이해』 등이 있으며, 역서로 『세계종교사상사 1』, 『중세사상사』 등이 있다.

 

  • 부제 : 카시러·말리노프스키·엘리아데·레비스트로스
    저자 : 이반 스트렌스키
    역자 : 이용주

  • 판형 : 148*225mm
    장정 : 무선
    면수 : 390쪽
    발행일 : 2008년 6월 20일
    가격 : 20,000원
    ISBN : 978896147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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